전문가들도 놀란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파격적인 석유 거래… 베네수 국민들 '분통'

감색 계열 수트에 파란 타이를 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오렌지빛 옷을 입고 있는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

사진 출처, EPA/Getty Images

사진 설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 모두 이번 거래를 성공적이라고 치켜세웠다
    • 기자, 윌 그란트
    • 기자, BBC 멕시코·중앙아메리카·쿠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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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특수부대가 지난 1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관저를 급습해 그를 강제 실권시킨 순간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이 미 행정부의 핵심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당시 그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할 것이며 당분간 베네수엘라산 석유의 판매를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라카스에서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과 베네수엘라간 대규모 석유 계약이 체결되면서 그 계획이 결실을 맺었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 주도 기업은 베네수엘라 내 17개 유전에 대해 100년간의 이권을 확보하게 됐다. 이는 원유 650억배럴 규모로, 베네수엘라 원유 매장량의 5분의 1이 넘는 막대한 수준이다.

양측은 모두 이번 계약이 각국에 이익이 된다며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세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석유 계약"이라고 불렀고,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이번 합의가 "역사적"이라며 1000억달러(약 740억파운드) 투자와 2000억달러 이상의 세수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베네수엘라·이란 담당 특별대표를 지낸 엘리엇 에이브람스는 "이는 끔찍한 계약으로,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국가 자산의 20%를 헐값에 넘겨버렸다"며 "그는 단순히 워싱턴의 요구에 순응하고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베네수엘라 해안가에 있는 오일 탱커

사진 출처, Reuters

사진 설명, 미국 주도 기업이 확보한 이권은 총 650억 배럴 규모의 원유에 해당한다

백악관은 지난 1일 이번 계약의 틀에 대한 세부 내용을 담은 팩트시트를 공개했다.

미 정부는 셰브론에 이어 베네수엘라에서 두 번째로 큰 민간 석유 생산업체인 '노스 아메리칸 블루 에너지 파트너스(Nabep)'라는 베네수엘라의 민간 기업과 협력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업체와 협력하는 방식 중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미 정부가 "이사회 구성원의 임명에 대한 거부권을 가지며 Nabep 이사회 이사의 과반수는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는 조항이다.

미국과 이란 간의 계속되는 전쟁으로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치솟는 상황에서 중동 이외 지역에서의 원유 증산은 소비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그 버검 미 내무장관은 폭스 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협정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지정학적 중심지를 그가 언급한 '중동의 요충지'에서 서반구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 에이브람스는 걸프 지역의 석유 공급이 현재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서 미·베네수엘라 파트너십에는 일종의 논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번 조건이 너무나 일방적이어서 "식민주의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주는 일종의 열병 같은 꿈"과 같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이번 계약이 18세기 남미 전역에 미국의 영향력을 행사했던 원칙인 "먼로주의를 재구축한 것"이라며 "우리 앞마당에서 악의적인 외국 영향력을 축출하고 우리 반구에서 미국의 패권이 다시는 의문시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정부는 이번 계획이 베네수엘라 국민과 미국인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위험 요소와 더불어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이 존재한다.

제시된 기간만 해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합의가 2~3년 내에 수익을 창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에너지 전문가들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처참한 상황을 고려할 때 족히 10년은 잡아야 더 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휴스턴 라이스 대학교 베이커 연구소의 루이스 파체코는 BBC 문도와의 인터뷰에서 베네수엘라가 30년 전의 원유 생산 수준을 회복하려면 8년간 약 1000억달러를 투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파체코는 "그 자금을 누가, 어떤 목적으로 관리할 것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아울러 지난날 베네수엘라 내부의 석유 자산 관리 부실을 언급하며 "세기 최대의 석유 호황을 이미 탕진해 버린 사람들에게 그 돈의 관리를 다시 맡길 셈인가?"라고 그는 되물었다.

베네수엘라 야당은 이번 계약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야당은 그를 마두로와 다름없는 인물로 평가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 정부를 부패한 마약 카르텔이라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 주변에 현대사 최대 규모의 함대를 집결시킨 바 있다.

미국 백악관에서 만난 마리아 코리아 마차도와 트럼프 대통령이 노펠상을 맞잡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EPA

사진 설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신의 노벨 평화상을 전달한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

미국이 마두로 행정부의 부통령과 손잡고 이토록 쉽게 태세를 전환한 것은 베네수엘라 야권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대권 주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는 선거를 앞두고 지지가 절실한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더욱 거침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경제학자 리카르도 하우스만은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겨냥해 소셜미디어에 "당신들은 베네수엘라 국민을 해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압제자와 손잡기 위해 미국의 권력을 쓰기로 선택했다"고 적었다.

이어 "미국의 리더십을 발휘해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먼저 회복시키는 대신, 자산 압류와 불법적이고 억압적인 정부와의 위헌적 합의를 밀어붙이기를 택했다"고 비판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임박한 선거가 치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선거를 향한 명확한 청사진마저 부재하다는 사실은 많은 야권 인사들에게 배신감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념적 스펙트럼의 반대편, 즉 진영의 다른 쪽에서도 깊은 배신감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집권 사회당(PSUV)이 미국의 이번 거래를 두고 로드리게스 부통령을 지지하고 나섰지만, 대다수의 베네수엘라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항복 선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거의 30년 가까이 이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에 맞서온 이들 로드리게스 부통령이 국가의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을 숙적에게 갖다 바쳤다고 느끼고 있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 국영 석유회사 PDVSA의 수장이자 석유부 장관을 지낸 라파엘 라미레스는 이번 계약이 "석유를 넘겨주고 미국의 새로운 식민주의에 문을 열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차베스는 지난 2008년 초, 오리노코강 유역의 전직 엑손모빌 유전에서 일요 TV 프로그램인 '알로 프레시덴테(Aló Presidente)'를 진행했다. 이 지역 내 석유회사 자산 중 일부를 국유화한 직후였기에 그의 태도는 당당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국영 석유회사의 유전 소유권을 언급하며 "우리 손에 고삐가 쥐어져 있다"며 "우리는 절대 이를 다시 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전의 친미 정권들이 베네수엘라를 "그링고(gringo·미국인을 가리키는 속어)들의 나라"로 전락시켰다고 맹비난했다.

아울러 "우리 국가를 향한 강도질이었지만 볼리바르 혁명이 이에 제동을 걸었다"라며 PDVSA 직원들의 환호 속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바로 그 차베스의 제자이자, 그가 직접 점찍은 후계자의 후계자가 이제 와서 워싱턴과 불투명한 계약을 체결하고 이를 베네수엘라의 승리라 치켜세우고 있는 것이다.